예린이의 다음 일기
조금씩 어른의 생각을 배우는 하루
오늘 예린이는 학교에 가기 전부터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공부도 예전보다 어려워졌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린이는 이 마음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듯이, 마음도 그냥 지나가게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 조회 시간, 담임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은 지금 자라는 중이에요. 자란다는 건 키만 크는 게 아니라, 생각도 같이 크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예린이는 괜히 노트를 꾹 눌러 적었다. 생각이 크는 건 어떤 걸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왠지 중요하게 느껴졌다.
첫 수업은 수학이었다. 오늘은 조금 어려운 문제들이 나왔다. 예린이는 처음 문제를 보자마자 겁이 났다. 숫자도 많고, 문제도 길었다. 순간 ‘이건 못 풀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린이는 연필을 내려놓지 않았다. 문제를 한 줄씩 읽고, 아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당장 답이 보이지 않아도, 이해되는 부분부터 붙잡아 보자는 생각이었다. 결국 모든 문제를 다 풀지는 못했지만, 절반은 스스로 해결했다. 예린이는 틀린 문제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남았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있었다. 오해에서 시작된 말이 커져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예린이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 대신 한 발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맞다, 틀리다를 나누었겠지만, 오늘의 예린이는 달랐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예린이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 다 화난 이유가 다른 것 같아.” 그 말에 친구들은 잠시 멈췄고,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더 나빠지지도 않았다. 예린이는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과학 시간에는 피부의 상처 회복 과정을 배웠다. 상처가 생기면 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왜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예린이는 그 설명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상처는 바로 낫지 않고, 서두르면 오히려 더 오래 간다는 말이 마치 사람 마음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예린이는 공책 옆에 조용히 적었다. “기다림도 치료다.”
점심시간, 예린이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서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예린이는 생각했다. 꼭 계속 웃고 떠들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수 있구나. 이런 관계도 있다는 걸, 요즘에서야 알게 되었다.
오후에는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각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말해보는 활동이었다. 예린이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람 몸을 공부하는 게 좋아요. 특히 피부요.” 친구들 중 몇 명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 명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예린이는 괜찮았다.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스스로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예린이는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구름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햇빛은 부드러웠다. 예린이는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천천히 가도 괜찮겠지.’ 빨리 답을 내리지 않아도, 남들보다 늦어 보여도, 방향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숙제를 하다가 막히는 문제가 나왔다. 예린이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문제를 읽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자 답을 바로 보지 않고 표시만 해두었다. 나중에 물어보거나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예린이는 이제 알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예린이는 부모님과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힘들었던 일도, 괜히 마음이 복잡했던 순간도 솔직하게 말했다. 부모님은 조언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었다. 그 시간이 예린이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예린이는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은 생각이 많아 글이 길어졌다. “오늘 나는 바로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마음도, 공부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 문장을 쓰고 나니, 하루가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린이는 미래의 자신을 다시 떠올렸다. 중학교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하고, 고등학교에서 더 어려운 선택을 하며, 대학교에서 사람의 몸을 깊이 배우는 모습. 그 길에는 분명 상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배운 것처럼, 상처는 기다림 속에서 회복된다는 걸 예린이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피부과 의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조금 더디게 나아도 괜찮아요. 몸도 마음도 스스로 회복할 힘이 있어요.”
오늘의 교훈은 단순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 예린이는 아직 어린아이지만, 오늘 하루를 통해 어른의 생각에 한 발 가까워졌다. 이 일기 역시 그 성장의 한 페이지로,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